행복? 기쁨?
행복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기쁨은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완전히 바꿔 버린다. 기쁨을 경험헐 때 우리는 흔히 현실 실체의 더 깊고 더 진실에 가까운 어떤 층을 흘낏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에 사로 잡힌다. 자아도취는 행복할 수는 있어도 결코 기쁨을 경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아도취는 자기를 놓아 버리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아도취자는 심지어 기쁨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못한다. 바로 이것이 첫번째 산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여기에서는 두번째 산이 제공하는 것을 볼 수 조차 없다.
출발점이 다른 "행복"과 "기쁨"
기쁨은 잘 살아가고 또 잘 이끌어져 가는 인생의 정서적인 차원, 이런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 반응이다.
빛나는 사람이 되려면 인격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까? 당신은 어쩌면 밝은 인격이란 부담에 시달리지 않는 삶, 즐거움과 기쁨이 끊이지 않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쁨에 넘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눈부시게 밝은 영혼을 가진 사람일수록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인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데 기쁨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반짝이는 빛을 나의 태양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는 음악을 나의 교향악으로, 다른 사람의 입술에 피어나는 미소를 나의 행복으로 삼으려 노력한다. 기쁨은 저 혼자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고 그는 결론 내린다. 기쁨은 잘 살아온 인생의 왕관이다.
행복은 개인적인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으로 행복을 측정한다. 이에 비해 기쁨은 자기를 초월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기쁨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서 우리를 덮치는 어떤 것이다. 행복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서 비롯됬지만, 기쁨은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데서 비롯된다. 행복은 서서히 사라진다. 우리의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것들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은 경이로움과 감사와 희망을 가지고서 사는 것이다. 두번째 산에 있는 사람들은 예전의 모습에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깊이 헌신하는 삶을 갈아간다. 이들이 내뿜는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변함없이 꾸준한 힘이 되어준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문장의 탄생
도덕 생태계는 어떤 특수한 순간에 제기되는 커다란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인 반응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에 북반구 사람들은 엄청난 경기 불황과 세계를 뒤흔든 전쟁을 겪었다. 커다란 문데들은 커다란 제도적 대응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군대에 가고,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거대 기업에서 일했다. 그들은 전쟁을 치르는 국가의 구성원으로 단단하게 결속했다. 그랬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제도에 자기를 맞추며 집단의 뜻에 따르고, 권위에 복종하며,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려 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이 도덕 생태계는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에도 획일성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이 제법 많긴했다. 양복을 입고서 무감각하게 그저 높은 지위만 쫒으며 오로지 조직의 일원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영혼을 말살한다고 말이다. 집단이 개인을 깔아뭉개고 있으며,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의식이라곤 없는 하나의 숫자가 되어버렸다는 인식이 존재했던 것이다.
일중독이 놀라운 효과
정서나 정신적 질문들에 주의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데는 일중독만큼 놀랍도록 효과적인 것은 없다.
정서적으로 회피하고 도덕적으로는 분리된 인간이 되는 것이,
주변 사람들과 멀리 거리를 두고 아무 상관하지 않게 되는 것이,
자기 내면 깊은 곳의 어두운 정글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
감정 기복을 점덤 줄여서 그저 무덤덤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놀라울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무살 때보다 서른다섯 살 때 더 따분하고 냉담하다는 사실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텔로스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무언가 잘못된게 있음을 부정한다. 그런 다음 낡은 실패의 계획을 따라가려는 노력을 강화한다. 그러고 나서는 어떤 새로운 흥분거리( 예를 들면 연애를 하거나 술을 더 많이 마시거나 마약에 손을 대거나 하는 것 )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러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다.
이것이 일종의 텔로스telos(목적)위기이다. 텔로스 위기에 빠진 사람은 자기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철학자 니체는 인생을 살아갈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과정"이든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목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여정에서 만나는 온갖 고난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기 목적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작은 고난에도 쓰러져 버린다.
텔로스 위기는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걷는 형태, 하나는 잠자는 형태이다.
걷는 형태에서는 고통당하는 사람이 그저 계속 터벅터벅 걷기만 한다. 이 사람은 어떤 충격을 받거나 깊은 권태감에 시달리는 상태이지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자기 신생을 어떻게 바꾸어야 옳은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가기가 하고 있던 것을 계속 하고 있을 뿐이다. 똑같은 일거리,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일상, 똑같은 인생,,,, 이 사람은 자기가 안주하고 있다는 심리적 자각과 함께 살아간다.
텔로스 위기의 두번째 유형은 잠자는 것이다. 이 경우에 고통받는 사람은 그냥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며 넷플릭스 드라마만 본다. 이 살마의 자신감은 바닥이 났다. 이 사람은 자동 초점설정에 의해 마비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게 이미 너무 늦어 버렸고 자기 인생이 자기를 이미 스쳐 지나가 버렸다는 전혀입증되지 않은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다른 사람들이 거둔 성취가 그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주기 시작한다. 남들의 빠른( 정확하게는 빨라 보이는 ) 출세와 자신의 무기력한 처지 사이의 격차가 커질수록 그 고통은 더욱 깊어진다.
포괄적인 단어 "외로움"
진정한 외로움에는 단지 고독만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인 공허함, 즉 어떤 대답을 이끌어내려면 당연히 가져야만 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의 상실, 즉 "자기의 상실"까지 포함된다고 본다. 이것은 "자신이 뿌리뽑힌 존재,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느낌이다. 많은 과격분자들이 테러 집단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는 이유가 다른데서는 소속감을 경험할수 없으며 적어도 이슬람국가는 그들에게 이 소속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들에게 순교자라는 영웅이 되는 길을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바가 있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때 나타나는 현상
다른 사람의 말이든 자기 내면의 말이든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에는 예상하지 않았던 추가 질문이 포함되며, 이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범위를 초월해 확장된다.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끈기를 가진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성숙하지 않는 태도로 평가하며 보낸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떤 것에 맞닥뜨리는 순간 즉각 자기 마음을 결정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한번 어떤 판단을 내려 분류해서 정리해버리고 나면(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 더는 복잡한 온갖 요소를 고려하면서 다시 살피려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광야는 우리에게 소극적 수용능력, 불확실성 속에 머무는 능력, 성급히 미숙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능력을 가르친다.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질문을 한다는 뜻이다.
전혀 다른 인생을 감지할 때
당신의 자아는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예측 불가능성의 놀라움보다는 예측 가능성의 안정성을, 모호함보다는 명료함을 선호한다. 당신의 자아는 들릴락 말락 하는 마음의 웅얼거림을 언제나 덮어 버리고 싶어한다. 이 자아는 당신이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마법의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일자리나 인생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와 달리 당신의 자아로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인생을 당신이 감지하는 것이 바로 이 깊은 단계에서이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꽃의 향기,
우리가 듣지 못했떤 언떤 고조의 울림,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떤 나라의 소식"
을 감지하는 무언가가 당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우리는 지금 포기의 첫단계, 새로운 자아가 떠오을 수 있도록 낡은 자아를 버리는 단계에 있다. 당신이 자기의 이상적 자아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이때이다. 당신이 심장과 영혼을 진정으로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이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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